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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6.25 사변 전쟁터에서 총에 맞고 살아남은 장백마 


 의성군 단밀면 주선3리 서낙골(仙鶴골)에 김씨 부인은 18세에 장씨 집안의 3대 독자에게 시집을 갔으나 4년 동안 임신하지 못했다. 
부엌에서 밥을 짓다가 방 안에서 시아버님과 시어머님이 소곤거리며 “아기가 생기지 않을 것 같으니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아들을 새로 장가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서러워서 흐느끼며 울었다. 
남편이 “새 장가는 내가 가는 것이지 부모님이 가시는 게 아니니 걱정 말고 나를 믿어라. 나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부인들이 단산할 나이가 될 때까지 당신을 믿고 기다릴 테니 당신은 나만 믿고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그리고 “여기서 약 20리 떨어진 백마산(白馬山) 정수암(淨水庵) 절에 가서 생남불공(生男佛功)을 해 보라”고 권했다.  
김씨 부인은 22세부터 생남불공을 다녔으나 임신하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시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42세에 임신하여 43세에 첫 출산을 앞두고 산고를 겪을 때, 어느 날 정수암 주지 스님이 꿈에 “지금 장ㅇㅇ씨 부인 김ㅇㅇ씨가 산고를 겪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깊이 잠을 잘 수 있느냐, 어서 일어나 기도하라”는 꿈을 꾸고 깜짝 놀라 일어나 목욕재계한 뒤 밤새 기도했다. 
아침 일찍 그 집에 가니 삽짝에 금줄이 쳐져 있어 “몸을 풀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인이 나와 “스님, 들어오시지 않고 왜 거기 서 계세요?”라며 방으로 모시고 들어가 이야기를 들으니, 산모가 삼일 동안 해산하지 못해 고생하다가 스님이 기도하신 바로 그 시간에 몸을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기 이름을 백마산 정수암에서 20년 동안 생남불공을 한 끝에 경오생(庚午生) 백말띠 아들을 낳았다는 뜻으로 ‘장백마(張白馬)’라 지었다고 한다. 
장백마는 21세 되던 해 6.25사변이 일어났고, 당시 독자고 뭐고 할 것 없이 소집영장이 나왔다. 
어머니 김씨 부인은 아들의 소집영장을 받고 바로 대구로 가서 3일 만에 은목거리 메달에 지장보살님 존상을 새겨 와서 입대하는 아들의 목에 걸어주며 “너는 내가 낳았지만 정수암 지장보살님의 아들이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항상 지장보살님만 생각하면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져도 전우들이 다 죽어도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말라”고 말했다.  
아들은 면사무소에서 소집되어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 훈련을 받고 배치되었다. 
트럭이 출발하자 부모들은 땅에 주저앉아 모두 통곡했으나 장백마 어머니는 정수암 쪽을 향해 무수히 절을 했다고 한다. 
한편 장백마는 제주도 제1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소총 부대로 배치되었는데, 그 부대는 철원 도피안사에서 좀 더 들어간 백마고지였다. 
한창 육박전이 벌어져 밀리고 좇기던 중 불행하게도 적탄에 가슴 중앙을 맞아 쓰러졌다가 한참 만에 깨어나 보니 전후좌우에 전우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으나 자신은 몸에 파편 하나 박히지 않았다. 
“내가 죽어 저승에 갔나?”  
생각했는데, 저승이라면 전우들도 멀쩡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아 “이것이 어머니가 말씀하신 지장보살님의 가피력인가?”  
하여 감사의 예배를 드리려고 목걸이를 벗어 보니 메달에 새겨진 지장보살님 가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불보살님의 불가사의한 가피력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쓰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하고자 전화를 드렸더니, 금년 봄에 90세를 일기로 장백마 씨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산승이 출가 전에 몇 번인가 메달을 본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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